메스를 든 한의사,
부산대 한방병원 안이비인후피부과
서형식 교수가 말하는 한의학 미용의 뿌리
부산대학교 한방병원 안이비인후피부과, 서형식 교수의 진료실 안쪽은 흔히 떠올리는 한의원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처치대에는 포셉과 봉합사, 절개 기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쪽 공간에는 안과 진료에 쓰이는 세극등과 안저카메라가, 다른 공간에는 절개와 지혈에 쓰이는 고출력 레이저 장비가 자리를 잡고 있다.
피부와 체형을 다루는 미용 진료에 뛰어드는 한의사가 늘고 있다. 레이저 장비를 들이는 한의원도 적지 않다. 그런데 한의사가 레이저를 잡는 것은 정말 새로운 일일까. 한의학의 미용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교지편집위원회 뉴스룸은 이 질문을 들고 세 사람을 만났다. 수술대와 강단에 선 교수, 서울 강남의 국제진료 현장에 선 선배, 창원의 다이어트 진료실에 선 선배다. 1부에서는 메스와 레이저를 든 한의사, 서형식 교수에게서 한의학 미용의 원리와 근거를 듣는다. 2부에서는 두 선배가 서 있는 다이어트·체형 미용의 현장으로 간다.
1. 이름을 잃은 '외과'

서형식 교수의 전공은 안이비인후피부외과, 그중에서도 외과 영역이다. 한의계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이름이다.
"외과는 사실 원래부터 있었어요. 없었던 게 아니라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겁니다. 국가고시 과목에도 외과학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제가 학교 다닐 때도 외과라는 과목을 깊이 있게 가르치는 교수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질 않으니까 가르칠 수도 없었던 거죠."
지금의 안이비인후피부과는 원래 '외관과'라 불렸다. 외과(外科)와 오관과(五官科)를 합친 말로, 눈·코·귀·입·피부라는 다섯 감각기관과 몸 바깥에 드러나는 질환을 통틀어 진료한다는 뜻이다. 피부를 다루는 오늘날의 미용 진료도 결국 이 '몸의 바깥'에서 출발한다.
"여기에는 치료법으로 약을 쓰느냐 수술을 하느냐는 애초에 상관이 없습니다. 양의학의 외과는 수술이라는 치료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한의학의 외과는 질병이 몸의 어디에 분포하는지, 그 위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한의사 전문의 제도를 만들면서 낯선 '외관과'라는 이름을 알기 쉽게 바꾸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안이비인후피부과인데, 이 과정에서 '외과'가 빠졌다. 한의사가 외과를 잘 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국가고시 과목에는 여전히 외과학이 남아 있고, 정작 피부과는 없습니다. 이름과 시험 과목이 서로 어긋나 있는 셈이에요. 자연히 외과를 실제로 시행하는 한의사도 지금까지 거의 없습니다."
이름이 사라지자 사람도 사라졌다. 서 교수가 외과에 발을 들인 계기는 거창하지 않았다. 치료의 한계였다.
"어떤 치료든 모든 질환을 다 낫게 하는 100%의 치료법은 없어요. 예를 들어 피하에 생긴 낭종은 약물 치료나 침 치료로는 되지 않아요. 절개해서 끄집어내는 게 훨씬 좋은 치료입니다. 침·뜸·부항·한약이라는 기존 치료로는 한계가 뚜렷한 환자들을 볼 때마다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 검사실 한쪽에 놓인 안과 검사 장비들. 시력·굴절 검사기부터 안저카메라, 세극등까지 양의학 안과에서 쓰는 장비와 동일하다. /교지편집위원회 뉴스룸
2. 화침, 가장 오래된 레이저
서 교수는 대한통합레이저의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연은 학회가 지금의 이름을 갖추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출력 레이저 조사 치료를 연구하던 장인수 우석대 한의과대학 교수(현 학회장)와 교류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외과가 전공이라 절개용 고출력 레이저에 관심을 두고 있던 그는 이후 저출력과 고출력을 아우르는 레이저 전반을 다루게 됐다.
"지금 미용 영역에서 쓰이는 레이저는 대부분 단순 조사용이 아니라 식약처에 수술용으로 등록된 고출력 장비예요. 열에너지로 따지면 최소 섭씨 50도 이상, 피부에 닿으면 태울 수 있는 수준입니다."
한의학에서 열에너지를 쓰는 가장 익숙한 치료는 뜸이다. 화침(火鍼)도 있다. 화침은 침 끝을 불에 달궈 벌겋게 만든 다음 피부에 대는 치료법, 이른바 '낙법(烙法)'이다. 그 자리가 타면서 작은 구멍이 나고, 그 구멍으로 안에 고여 있던 내용물이 빠져나오기도 하고, 절개가 되기도 하며, *소작으로 지혈이 되기도 한다.
*소작(燒灼): 열, 전기, 레이저, 화학물질 등을 이용해 신체의 일부 조직을 태우거나 지져서 제거하거나 지혈하는 의료 행위
"지금의 CO2 레이저로 피부를 소작하거나 절개하는 것과 원리가 완전히 같아요. 화침이 CO2 레이저의 가장 오래된 버전인 셈이죠. 이걸 두고 자꾸 '한의학'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열에너지를 어떻게 얻느냐의 차이일 뿐이에요."
한의대 교수에게 고전은 지켜야 할 형식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고전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가치 있는 건 아닙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가치 있는 것만 골라 현대적으로 구현하면 됩니다. 불에 달군 침으로 지지는 것보다 레이저로 정확하게 절개하는 게 낫다면, 같은 열에너지 원리를 현대적으로 구현한 것뿐입니다."

▲ 부산대학교 한방병원 안이비인후피부과 시술실. 시술 침대 사이로 레이저 장비와 핸드피스, 발판 스위치가 자리를 잡고 있다. /교지편집위원회 뉴스룸
3. 법전 속에서 되찾은 메스
미용 레이저 대부분이 수술용 장비라면, 한의사가 그것을 쓸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한의사가 수술을 한다고요?"라는 질문과 같은 뿌리의 물음이다. 서 교수는 망설임 없이 법 조문을 든다. 실제로 이 질문은 경찰서를 거쳐 돌아온 적도 있다.
"한 번은 수술 케이스를 논문으로 투고했는데, 그걸 양방(?) 쪽에서 보고 경찰에 고발한 일이 있었어요. 한의사가 수술을 했다는 이유였죠. 그런데 의료법을 찾아보면 답이 이미 나와 있어요."
의료법 제24조의2(의료행위에 관한 설명)는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 환자에게 설명하고 서면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한의사가 수술과 수혈, 전신마취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문 안에 이미 전제로 깔려 있는 셈이다. 서 교수가 이 조문을 제시하자, 경찰은 고발인에게 이를 알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여기에 힘을 더하는 것이 한의약육성법 제2조의 정의 조항이다. 이 조항에서 한의약을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한의학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의학의료행위(이하 “한의학의료”라 한다) 및 한약사(韓藥事)”로 규정한다.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이라는 문구는 2003년 법 제정 때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제정 당시에는 전통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행위로만 규정했고, 2011년 6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으로 지금의 문구가 더해졌다.
"한의학의 외연을 넓혀 국민 보건에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는 게 그 취지고요. 이 조항이 들어갈 때 양의학 쪽에서 상당한 반발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의사에게는 굉장히 강력한 근거 조항인데, 정작 한의사들도, 심지어 학생들도 이런 법 내용을 잘 모릅니다."
2022년 12월 22일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2016도21314). 이 판결은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이 면허 범위를 벗어나는지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해당 행위가 한의학적 원리에 입각한 적용·응용과 무관함이 명백한지였다. 무관함이 명백해야 위법이 된다는 뜻이니, 결과적으로 한의사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기준이 넓어진 셈이다.
"문제는 '한의학적 원리'를 음양오행이나 기혈 같은 철학적 개념으로만 좁게 해석하는 관행입니다. 음양이나 기혈과 무관한 물리학적 원리도 한의학 안에 분명히 있는데, 이 부분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다 보니 법원 판단에서도 한의사와 한의학이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진료실에서는 실제로 어디까지 가능할까. 서 교수는 목에 7센티미터 크기의 지방종이 있던 환자를 기억한다. 다른 병원에서 전신마취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전신마취를 꺼려 찾아온 환자였다. 국소마취만으로 절개해 주먹만 한 지방 덩어리를 꺼냈고, 2주 뒤 실밥을 풀자 목이 다시 평평해졌다. 치료와 외모 회복이 한 번에 이뤄진 사례다.
"한방병원에도 장비와 마취 여건만 충분하다면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습니다."
부산대 한의전 학생들은 3학년 2학기 임상실습부터 봉합술 술기 실습을 받는다. 지금까지 전공의도 여러 명 거쳐 갔다. 그러나 서 교수는 이런 병원이 사실상 여기뿐이라고 말한다.
"작은 수술이라도 해보지 않으면 심적으로 부담이 큽니다. 의료 사고에 대한 걱정도 있고요. 그래서 다들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서형식 교수가 실제 절개 및 제거 수술을 진행하는 모습 /교지편집위원회 뉴스룸
4. '한의학 시술'은 따로 있는가
그렇다면 한의사의 미용·외과 시술은 양의학 시술과 다른 철학을 가져야 할까. 서형식 교수의 답은 단호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의사의 외과적 시술 행위는 양의학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의사의 시술과 양의사의 시술이 꼭 달라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야말로 문제이고, 개선돼야 합니다. 외과의 본질은 한의든 양의든 인체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해 해결하는, 실사구시적 의료 영역입니다."
그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명제가 있다. 한의학과 양의학이라는 구분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감염이 생기면 빨갛게 붓고 아프고 열이 납니다. 팔강변증으로 보면 명백한 열증이죠. 그럼 그 열을 다스리는 본초학의 청열약, 그중에서도 청열해독약이 있어요. 금은화, 연교 같은 약재입니다. 그게 바로 항생제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청열약과 항생제를 전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부르는 이름이 다르기 때문이죠."
차이가 생긴 원인은 시대의 기록 방식이라고 본다. 한의학은 염증의 겉모습을 홍종열통(紅腫熱痛)이라 불렀다. 눈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그 안에서 혈관이 확장되고 백혈구가 빠져나가는 과정은 현미경 없이는 볼 수 없었다.
"옛 의학 문헌은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만 기록할 수밖에 없었어요. 대신 위기(衛氣)가 모여든다거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다는 식의 언어로 그 현상을 설명하려 했던 거고요. 지금 현미경으로 보는 것과 결국 같은 현상을, 다른 정밀도로 서술했을 뿐인 거죠."
한의학이 철학적 개념으로만 이루어졌다는 통념에도 그는 반례를 든다. 엑스레이도 초음파도 없던 시절, 과거의 의사(지금의 한의사)들은 피부 아래 농양에 거머리를 붙일 적절한 위치를 찾기 위해 물에 적신 한지를 피부에 붙였다. 피부가 얇은 곳일수록 열이 빨리 퍼지기 때문에, 가장 먼저 마르는 자리가 곧 거머리를 붙일 자리였다.
"순전히 물리학입니다. 음양이나 기혈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런 물리적 이론도 한의학 안에 분명히 있는데, 교육 과정에서 잘 다뤄지지 않다 보니 마치 그런 이론이 없는 것처럼 오해되고 있는 겁니다."
서 교수는 한의학과 양의학을 나누는 순간 한의학이 스스로를 과거에 가둔다고 말한다.
"그렇게 나누는 순간 한의학은 과거가 되고 양의학은 자꾸 현대가 되거든요. 그런데 양의학도 선사시대와 고대 그리스·로마를 거쳐 르네상스를 지나 지금에 이른 겁니다. 그들에게도 지금 보면 조악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어요. 한의학만 유독 조선시대 의학으로 멈춰 있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한의학과 양의학을 나누는 기준은 시대가 아니라 지역입니다."
그리고 한의학을 한 문장으로 정의했다. 한의약육성법의 문구와 정확히 겹치는 정의다.
"저는 한의학을, 고전적 가치를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하여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의료 학문이라고 정의합니다."
5. 미용은 블루오션, 승부는 실력
미용 영역은 양의학계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저가 네트워크 병원과 어떻게 경쟁하겠느냐는 걱정도 나온다. 서 교수의 진단은 낙관적이었다.
"한의사에게는 오히려 미용이 블루오션입니다. 없던 영역이 새로 생긴 거니까요. 다만 양의학과는 싸움의 방식이 다릅니다. 양의학은 철저히 장비 싸움이에요. 레이저 장비는 빠르게 바뀌고 좋은 신제품이 계속 나옵니다. 그러니 모든 질환을 다 보겠다고 욕심내기보다는, 하나를 확실하게 특화하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장비 싸움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싸울까. 그는 레이저 시술의 본질에서 한의학의 자리를 찾았다.
"레이저 시술은 본질적으로 화상을 입히는 치료예요. 그렇다면 화상을 덜 입게 하는 술기를 갖추거나, 화상을 빨리 회복시키는 약을 함께 처방하거나, 아예 시술 전에 미리 약을 복용시켜 화상을 덜 입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지점에서는 한의학의 강점을 살릴 여지가 충분해요. 결국은 실력 싸움입니다."
서 교수는 한의사가 이미 쥐고 있는 무기를 스스로 좁게 본다고도 지적했다. 광물성 약재가 대표적인 예다.
"이미 한의사는 단일 성분 약을 쓰고 있습니다. 유황(硫黃) 같은 광물성 약재가 대표적이에요. 그런데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광물도 한약재라는 사실 자체를 낯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약이라고 하면 으레 말린 풀 같은 것만 떠올리기 때문이죠. 스스로 갖고 있는 무기를 스스로 좁게 규정해버리는 셈입니다."
유황은 본초학에서 옴(疥癬)이나 습진 같은 피부 질환에 외용해 온 약재이기도 하다. 한약을 물에 달이는 이유도 결국 성분을 추출하기 위해서다. 물과 술, 식초는 모두 오래전부터 써온 용매이고, 용매에 따라 뽑히는 성분도 달라진다. 서 교수는 이를 '성분추출학'이라 부르며, 한약이 탕약이라는 틀 안에만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장비 공급을 꺼리는 의료기기 업체 문제에 대해서도 서 교수는 시장 논리로 답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므로 지금은 숫자가 많은 양의학을 먼저 택하겠지만, 그 시장도 언젠가 포화되면 한의사 시장으로 판로를 넓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의사는 감각과 개인기에 의존해 치료해왔기 때문에 주변 의료 산업과 결탁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의사들도 협회나 학회 차원의 협상력을 키우고, 경제 논리에 좀 더 눈을 떠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1부를 마치며
(2부에서 계속)
유창규 학생기자(18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