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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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다시 펼치다 ①] 2000년 된 텍스트를 2026년에 읽는 이유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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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된 텍스트를 2026년에 읽는 이유

한의대에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다. 세상에 ‘원전학’이라는 과목이 따로 있다는 것을. 『황제내경(黃帝內經)』과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익숙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수천 년 전 쓰인 문장을 실제 수업에서 펼쳐 놓고, 단어 하나의 뜻을 붙잡고 몇십 분씩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본과에 들어서면 빽빽한 한자가 화면을 채운다. 교수는 번역에 그치지 말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라고 한다. 그때 질문이 생긴다. “그런데 이걸 왜 배우지?”

2026년이다. 논문은 몇 초면 검색된다. AI는 한문도 번역한다. 의학은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그런데 한의대 학생들은 여전히 수천 년 전 문장을 읽는다. 얼핏 이상한 풍경이다. 더 흥미로운 건 이 질문을 학생들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한의학원전학회는 올해 정기학술대회에서 ‘21세기 한의학의 근거’를 다시 묻는 문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원전을 연구하는 학계부터 고전의 자리를 다시 묻고 있는 셈이다. 이번 연재가 원전을 ‘암기해야 할 옛 문헌’이 아니라 ‘지금도 작동하는 사유 도구’로 다시 읽어보려는 이유다.

질문은 그래서 조금 달라져야 한다. ‘왜 아직도 원전을 읽느냐’보다 **‘원전에서 무엇을 읽을 것이냐’**가 중요하다. 원전을 처음 배우면 시험부터 생각한다. 원문을 읽고 해석을 붙인다. 중요한 구절에는 밑줄을 긋고 어느 편에 나오는지 외운다. 시험이 끝나면 상당 부분을 잊는다. 이미 정리된 교과서가 있는데 굳이 원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답은 교과서와 원전의 차이에 있다. 교과서는 대체로 완성된 개념을 보여준다. 원전에는 그 개념이 만들어지고 갈라지고 확장된 흔적이 남아 있다. 음양(陰陽)과 장상(臟象), 경락(經絡), 병인·병기(病因·病機) 역시 처음부터 지금 교과서에 적힌 한 줄짜리 정의로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몸을 어떻게 나눌지, 질병의 변화를 어떤 언어로 설명할지, 흩어진 증상을 어떤 패턴으로 묶을지를 고민했다. 교과서가 완성된 지도라면 원전은 그 지도가 그려지는 과정에 가깝다.

한의전의 공부 흐름을 따라가 보면 이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학생들은 장상과 경락, 병리와 질환 해석의 기본 언어를 배우고, 본초·방제와 상한론을 거쳐 점차 임상으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따로 외웠던 개념이 어느 순간 한 환자 안에서 한꺼번에 등장한다. 기획안 역시 원전학을 개별 문헌 해독에 머물지 않고 변증과 임상으로 연결되는 ‘사유 방법론’으로 보여주는 것을 연재의 핵심으로 잡았다.

사례 하나를 놓고 보자. 겨울 아침 찬바람을 오래 맞은 뒤 오한이 심해졌다. 열도 난다. 목덜미와 등이 뻣뻣하고 온몸이 쑤신다. 그런데 땀은 거의 나지 않는다. 한의대에 들어오기 전이라면 ‘감기 몸살’이라는 한 단어로 충분했던 장면이다. 『상한론(傷寒論)』을 배우고 나면 달라진다. 오한과 발열이 함께 있는지, 한출(汗出) 여부는 어떤지, 표증(表證)은 얼마나 뚜렷한지 따지기 시작한다. 하나의 증상이 아니라 증상들이 어떤 조합으로 나타나는가를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환자를 바꿔보자. 초여름이다. 갑자기 열이 크게 오른다. 목이 붓고 아프다. 입이 마르고 물을 찾는다. 얼굴이 붉고 열감이 강하다. 병의 진행도 빠르다. 여기서 상한론의 문법만으로는 설명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생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온병학(溫病學)이 들어온다. 온병학은 열성 질환이 어느 깊이까지 들어갔는지, 병위(病位)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진액(津液)이 얼마나 손상되고 있는지를 더 세밀하게 묻는다. 같은 ‘발열’인데 읽는 방식이 달라진다.

상한론이 병이 몸에 들어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전변(傳變)하는지를 추적하는 텍스트라면, 온병학은 열성 질환의 속도와 확산, 계절성과 병위의 변화를 더 민감하게 포착한다. 같은 열인데도 하나는 오한과 표증, 발한과 전변의 언어로 읽히고, 다른 하나는 위분(衛分)·기분(氣分)·영분(營分)·혈분(血分)이라는 깊이의 언어로 읽힌다. 여기에 삼초변증(三焦辨證)은 상초(上焦)·중초(中焦)·하초(下焦)라는 공간적 축을 보탠다. 똑같이 ‘열이 난다’는 말도 어떤 문법에 기대느냐에 따라 질문의 방향이 달라지는 셈이다. 인터뷰 취재 과정에서도 위기영혈과 삼초를 단순한 단계 암기가 아니라 병의 깊이와 위치를 읽는 틀로 보는 문제의식이 반복됐다.

이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책 가운데 하나가 오국통(吳鞠通)의 『온병조변(溫病條辨)』이다. 이 책은 추상적인 열병 이론만 늘어놓지 않는다. 어떤 증후가 나타나는지, 그 증후를 어떤 병리로 해석하는지, 그 판단이 어떤 치료 원칙과 처방으로 연결되는지를 조문 안에서 맞물리게 한다. 중요한 것은 특정 처방 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왜 이 시점에 이 처방인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목이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은교산(銀翹散)을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발병 시점, 오한의 유무, 갈증, 열세, 병위, 진액 손상을 함께 읽고 치료 방향을 정한다. 원문의 문장을 복제하는 게 아니라 문장 안에 들어 있는 판단의 순서를 읽는 것이다.

한의학을 공부하다 보면 같은 말이 과목을 건너 계속 등장한다. 음양은 생리학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병리에서도 나오고, 변증에서도 다시 나온다. 장부와 기혈진액(氣血津液)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과목마다 별개의 암기 항목처럼 보인다. 공부가 쌓이면 서로 연결된다. 결국 같은 몸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언어라는 사실이 보인다. 원전학은 바로 그 언어가 생겨난 자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공부다.

다만 오래됐다는 사실 자체가 근거는 아니다. 『황제내경』에 쓰였다고 옳은 것도, 『상한론』의 조문이라고 현대적 타당성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원전을 읽는 일과 현대적인 방법으로 검증하는 일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오히려 검증하려면 먼저 무엇을 검증하는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원문에 실제로 있는 주장인지, 후대 주석(註釋)에서 붙은 해석인지, 현대 교과서가 다시 정리한 개념인지 가려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원래 그렇다’는 말은 원전학적으로도 좋은 답이 아니다.

그래서 좋은 원전 읽기는 맹신과 정반대에 있다. 읽을수록 질문이 늘어난다. 왜 이런 구분을 했을까. 같은 증상을 다른 의가는 어떻게 읽었을까. 어떤 이론은 살아남고 어떤 이론은 달라졌을까. 지금도 설명력이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원전 연구에 AI와 데이터베이스, 실증적 방법론을 접목하려는 문제의식도 결국 여기서 출발한다. 기획안이 원전을 ‘지금도 작동하는 사유 도구’로 다시 보려 한 이유다.

물론 시험 사흘 전에는 그런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일단 외워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다음이다. 변증을 배우다가 예전에 본 문장이 생각난다. 본초와 방제를 배우다가 왜 이 처방이 여기서 나왔는지 궁금해진다. 상한론의 한 조문이 병리와 연결되고, 온병학의 한 개념이 내과 증례와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 처음에는 시험 범위였던 문장이 어느 순간 설명의 근거가 된다.

첫 번째 읽을 때는 한자였다. 두 번째 읽을 때는 개념이 된다. 조금 더 지나면 환자를 보는 질문이 된다. 원전은 그래서 한 번 읽고 덮는 책이 아니다. 배우는 것이 많아질수록 다시 읽힌다. 이번 연재의 제목을 ‘원전, 다시 펼치다’로 잡은 이유다.

수천 년 전 문장을 읽는 목적은 옛말을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데 있지 않다. 환자 앞에서 무엇을 보고 왜 그렇게 판단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은 깊고 정밀해야 한다. 그 지식을 사람에게 쓰는 마음은 성실해야 한다.

대의정성(大醫精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