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뉴스룸

교수 인터뷰

[외전(外傳) 1] 설득하고, 기록하고, 달리다 - 임병묵 교수

20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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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外傳) Vol.1 — 임병묵 교수님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인문사회의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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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正史)도 재밌지만, 진짜 재미는 야사(野史)에 있다는 말이 있다. 공식 기록이 담지 못한 뒷이야기, 이력 밖에서 벌어진 일들 — 그것이 때로는 본편보다 더 선명하게 한 사람을 보여준다. 외전(外傳)은 강단 위의 모습이 아닌, 치열하게 커리어를 쌓아온 교수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자 한다. 취향과 가치관, 성공과 실패, 그리고 한의계 현안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묻는다. 그 첫 번째 주인공으로 임병묵 교수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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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묵 교수님 약력

·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통합의학센터 방문연구원
· 추나요법·첩약 건강보험 급여화 연구 참여
· 한국한의약연감 창간 기획
·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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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분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보건대학원에 갔다. 진보색깔의 잡지에 몰래 기고하며, 직접 그린 만평도 올렸다. 이것이 임병묵 교수님의 20대였다.

🖊️연구

Q. 한의사 면허를 따고 보건대학원을 선택하셨어요. 당시엔 꽤 이례적인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요.

86년에 입학했으니까 벌써 40년이 됐네요. 그때 80년대는 한의학이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충분히 정착하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침구사 부활 요구, 의료일원화 주장, 학생들 사이에선 '한의학이 말살될 위기'라는 얘기도 많았고요. 그런 갈등들을 학생 신분으로 겪다 보니까, 정책 결정자들은 왜 우리 얘기를 잘 안 들어줄까 하는 고민이 생겼어요. 그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그 사람들의 논리 구조를 알아야겠다 싶어서, 친구들하고 의료사회학 같은 걸 스터디했죠. 그 책 저자들이 보건대학원 사람들이더라고요. 보건대학원 가면 이런 공부를 하는구나, 하고 진학을 결심했어요.

Q.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그래서 한의대 교수님 중에 그걸 ‘회색분자’처럼 보는 분도 있었어요. 한의사면 한의학을 공부해야지, 무슨 보건대학원이냐고. 선배들도 한의학 쪽으로 학위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권했고요. 그래서 결국 경희대 한의학 석사도 겸사겸사 병행했죠. 두 트랙을 동시에 간 거예요.

Q. 사실 교수님 커리어 자체가 문과형인지 이과형인지 좀 헷갈려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문과형 인간이에요. 수학이나 과학보다 국어, 영어 쪽을 더 잘했고 관심도 많았고. 근데 고2 때 담임 선생님이 "기술이 있어야 먹고살 수 있다"면서 이과를 권했거든요. 그래서 이과쪽으로 생각을 했는데, 막상 대학 입시를 앞두니 마음이 끌리는 이과 전공이 없더라고요. 한의학은 완전 이과스럽지가 않고, 고전을 기반으로 한 데다 인간적이고 신비로운 것도 있고. 잘 모를 때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Q. 한국한의학연구원 시절 얘기를 해주세요. 입사하셨을 때 연구원은 어떤 곳이었나요?

2000년에 입사했는데, 연구원이 생긴 지 6년밖에 안 됐을 때예요. 정규직원이 30명 정도, 국립연구소라고 하기엔 굉장히 열악한 상황이었죠. 그러다 새로운 원장님이 오셨어요. 복지부 국장 출신이셨는데, 그분이 오시면서 연구원이 성장하기 시작했거든요. ‘연구원이 성장하려면 큰 과제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아셨어요. 그때부터 연간 10억 이상의 대형 과제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기획을 내가 맡았어요. 내가 직접 과제를 따온 건 아니지만, 그걸 할 수 있는 기획을 한 데는 기여했다고 생각해요.

📃정책

Q. 한약분쟁 때 ‘월간 말’에 기고를 하셨다고요. 당시 상황이 궁금합니다.

(인터뷰 자리에서 학생이 1996년 7월호 '월간 말' 표지를 검색해 들이밀었다. "이거 어떻게 찾았어?" 교수님이 웃었다.)

한약분쟁 때 잡지 '월간 말'에서 한의사 입장을 굉장히 옹호해주는 글이 실렸어요. 진보적인 사람들의 여론을 잡아오는 데 상당히 기여한 글이었는데... 그 글을 제가 썼어요. 저자는 기자 이름으로 나왔지만. 몸 던지는 시위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글을 쓰고 알려야 여론이 바뀐다고 봤으니까. 30년 가까이 된 얘기예요.

Q. 만평도 직접 그리셨다고요.

청년 한의사회 파견으로 홍보 역할을 맡았는데, 의보연대회의 소식지에 만평을 연재했어요. 그림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내가 그릴까 하고 시작했죠. 조합별 적립금이 묶인 구조를 수도꼭지와 물통으로 표현한 만평이 꽤 히트를 쳤어요.

Q. 첩약보험 설계에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어디였나요?

한의사의 기술적 가치를 어떻게 보상하느냐였어요. 진찰료는 1만 원대, 기존 방제기술료는 고작 2000원이었거든요. 이 구조 그대로라면 첩약 한 제를 처방해봐야 한의사에게 5000원도 안 남는 거예요. 그래서 '심층 변증 방제 기술료'라는 항목을 새로 만들었는데, 당연히 "이미 방제기술료가 있는데 왜 또 만드냐"는 반론이 벽이었죠.

Q. 한약 분쟁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보시나요?

한약 분쟁 때 약사들하고 싸웠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한약을 약사가 취급하는 것에 굉장히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요. 트라우마가 있죠. 그렇지만 한약을 한의사들이 계속 쥐고 가는 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일본의 쯔무라나 크라시에 같은 복합제제가 보험으로 처방 가능해지면, 감기 환자한테 갈근탕, 소청룡탕을 자신 있게 줄 수 있거든요. 내과 의사처럼 처방 중심으로 앉아서 진료하는 한의사들이 많이 생길 거예요. 한의사 개인의 이익과 한의학 전체의 이익이 항상 일치하진 않아요. 저는 전체 파이를 키우는 쪽으로도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가치관

Q. 본인 사상체질은 어떻게 보세요?

젊을 때는 소양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소음인 쪽에 가깝다고 느껴요. 따뜻한 음식이 좋고, 인삼이나 보기 처방이 잘 맞고. 나이 들수록 몸이 솔직해지는 것 같아요. 경험해보면 뭔가 다르다는 건 느껴지거든요.

Q. MBTI는 어떻게 되세요?

INTJ예요. (목표 지향적이고 독립적인 전략가형으로, 희귀한 유형 중 하나로 꼽힌다.) 뒷마무리가 엉성한 게 싫고, 완성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어요. 근데 파고들어서 치밀하게 끝까지 가는 스타일은 또 아니에요. 강의가 연구보다 더 재밌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고. 내 재질은 딱 그래요.

Q. 달리기는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2001년 무렵에 연구원에서 과로를 많이 했어요. 어느 날은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의 감각이 달랐어요. 병원에서 진단받은 결과가 척수염이 살짝 지나갔다는 거였어요. 완치는 어렵고 그대로 안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죠. 이후로 울트라마라톤을 뛰는 한의사 선배 권유로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천천히 뛰니까 뛰어지더라고요. 2년 만에 풀코스를 완주했어요.

Q. 달리기가 삶에서 어떤 의미예요?

확 낫게 해줬다기보다는, 나빠지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생활이 굉장히 심플해졌어요. 예전엔 저녁에 약속이 많았는데, 요즘은 저녁에 한 시간 반 뛰고, 주말에 길게 뛰고. 그게 전부예요.

Q. 달리기 말고 다른 취미나 취향이 있으세요?

만드는 걸 좋아해요. 예전부터 손으로 직접 만드는 데 관심이 있어서 옷걸이 공예 같은 것도 해봤어요. 거치대 같은 것도 직접 만들어 보고.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눈에 무언가 완성되는 게 좋더라고요. 그림에 대한 갈증도 있어요. 언젠가 은퇴를 하게 된다면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과 같이 예술 활동에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어요.

Q. 만약 한의사가 되지 않으셨다면요?

영어 선생님을 했을 것 같아요. 어학 쪽으로 관심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만드는 걸 좋아하니까 그쪽으로도 뭔가 했을 것 같고. 나중에 연구랑 교육을 안 하게 되면, 그림이든 글이든 창작 쪽으로 시간을 좀 보내고 싶어요. 어렴풋하지만.

📌공통 질문

Q. 저희 교지편집위원회의 모토가 "기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습니다"입니다. 개인적으로, 혹은 한의학계에 꼭 남기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요?

남기고 싶은 것 중에 제가 좀 지분이 큰 게 있어요. 한국한의약연감을 시작하게 된거예요. (한국한의약연감은 한의약 관련 교육, 연구, 산업 등의 통계와 현황을 매년 집대성한 공식 자료집이다) 한의학 관련 통계 자료가 들쭉날쭉하고 서로 안 맞아서 정리를 해보자 했거든요. 복지부에 직접 제안했더니 "특정 분야 연감은 만들지 않는다"는 벽에 부딪혔어요. 그래서 연구원과 협회 사람들을 직접 설득해서 2009년에 첫 호를 발간했죠. 지금은 한의학연구원이 주관하고 진흥원도 참여해서 정부 주도로 커졌지만, 제가 첫 삽을 떴다는 것이 의미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Q. 부산대학교 한의전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공부를 잘해야 임상에서 자신감이 생기게 되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그게 학생으로서의 기본이에요. 그리고 만약에 개원을 하게 된다면 자영업자로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한데, 자기 이익하고 한의계 전체의 이익이 항상 일치하진 않잖아요. 장기적으로 공생하는 쪽으로 가는 게 더 좋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너희가 열심히 해서 들어온 거긴 하지만, 너희 노력만으로 들어온 건 아니다 — 그 말도 꼭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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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편집위원회의 지도 교수님인 임병묵 교수님을 <외전(外傳)>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모셨습니다. 한의학의 본질과 외연을 넘나드는 모든 순간에 에너지를 쏟아내시는 모습, 그리고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삶이 심플해졌다고 하셨던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수님의 다음 풀코스를, 그리고 언젠가 펼쳐질 창작의 시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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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영 학생기자(18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