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뉴스룸

문화 일반

[제5회 동제신춘문예] 문학평론 수상작 - 정세랑 소설에 나타난 삶의 윤리

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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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소설에 나타난 삶의 윤리

한의학과 석사 2학년 최영주(18기)

1. 사람을 구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히어로물에는 암묵적 약속이 존재한다. 현대의 히어로물을 대표하는 마블 영화에서는 외계 세력이 지구를 침공해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극악무도한 악당이 인류의 절반을 제거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극단적인 위기가 전면에 놓인다. 이 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을 지닌 영웅의 등장은 사태를 종결하고 세계의 질서는 회복된다. 문제는 극단적이나 해결은 명확하다. 이러한 서사는 관객에게 안도감을 제공한다. 이야기 속 세계에서 긴장감 있는 우여곡절이 누적되더라도, 서사의 종착점에서는 결국 영웅으로 표현되는 주인공이 사태를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크린 밖의 현실은 그와 다르다. 사람들은 세계를 구할 만큼의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삶의 위기에서는 뾰족한 적을 특정하기 어렵고 사실 위기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고 사소한 형태로 일상을 잠식한다. 정세랑의 히어로물은 바로 이 간극에서 출발한다. 그의 소설에서 누군가를 구하는 일은 선택받은 개인의 사명이 아니라, 평범한 인물이 자신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 이 세계에서 히어로란, 세상을 바깥에서 구원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눈앞의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다. 정세랑은 관객인 ‘나’를 이야기의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 나의 삶에서도 가능하다는 일렁임을 남긴다.

무기를 가지고 있는 기분,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의지는 재인에게 활력이 되었던 것이다. 재인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여자아이가 대부분의 이야기에서처럼 누군가에게 구해지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 여자아이가 다른 여자아이를 구하는 이야기

⟪재인, 재욱, 재훈⟫

정세랑의 작품에는 작은 초능력을 가지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의 초능력은 마블 영화의 초인적이고 물리적인 힘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다소 귀엽고 때로는 보잘 것 없어서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재인, 재욱, 재훈』의 재인은 일반적인 손톱깎이로는 깎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해진 손톱을 갖게 된다. 강철 손톱으로 세상을 구할 수는 없다. 재인이 정말로 갖게 된 것은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감각이다. “무기를 가지고 있는 기분”이라는 표현처럼 이 감각은 세계를 단번에 구원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마음이다.

“사람을 구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이 명제는 『덧니가 보고싶어』에서 가장 분명한 형태로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인 용기는 전연인인 재화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살리고 보자며 달려간다. 용기는 그저 사람이기에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써서 건물을 뛰어넘지는 못하고, 택시를 잡아 달린다. 재화의 위험을 포착하고 집에 진입하기 위해 건물 밖 가스관에 매달리다 결국 떨어진다. 용기는 재화를 직접 구출해내지 못한다. 그래도 그 틈을 타 재화는 피의자를 찌르고 용기와 함께 병원에서 눈을 뜬다. 영화처럼 근사하거나 매끈한 구출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분명 재화의 히어로다. 영웅이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위험 앞에서 타인을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립한다.

정세랑의 세계에서 초능력은 어떤 대의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계기다. 세계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눈앞의 사람을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때 히어로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도움은 연대로 이어지고, 연대 속에서 서로는 서로의 히어로가 된다. 『피프티 피플』에서 여러 인물들의 일상의 파편이 엮어지다 마지막에 모두가 모인 공간에서 밝혀지는 진실처럼 정세랑의 세계는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서로를 지키고 도우며 무사한 안전을 이룬다. 특별한 한 사람이 등장해 세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아는 방향으로 옳게 행동하고 서로의 손을 놓지 않음으로써 삶은 계속된다.

“이 영화가 재미없는 건 맞는데,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아직도 세계의 극히 일부인 것 같아. 히어로까지는 아니라도 구조자는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세사람은 각자 자기가 구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게다가 어쩌면 구해지는 쪽은 구조자 쪽인지도 몰라.”

⟪재인, 재욱, 재훈⟫

정세랑의 세계에서 누군가를 구하는 기적은 단 한 명의 영웅의 희생에 기대어 발생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소설은 일상의 작은 히어로들을 내세운다. 이 히어로들은 세계를 구하지도,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속에서 움직인다. 정세랑이 그리는 세계는 누군가를 구하는 행위가 고립된 희생으로 남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누군가를 구하면, 그 과정에서 결국 자기 자신 또한 구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정세랑의 소설이 세상을 순진하게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세계 속 위기 상황은 인류의 멸망이나 외계의 지구 침략처럼 극단적인 형태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들은 현실과 밀착된 유해함으로 나타난다. 데이트 폭력, 마약과 총기 사건처럼 오늘의 사회에서 충분히 목격 가능한 장면들이며, 인간을 경멸하고 혐오하게 만들기에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정세랑이 인간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방식은 인간을 다층적인 존재로 그려내는 데 있다. 정세랑의 작품에는 쉽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뻔하고 납작한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안은영은 장난감 총과 칼로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인물이다. 이 설정에는 헛웃음이 나는 사랑스러움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어휴, 씨발, 내가 또 저 꼴은 못 보지.”라고 분노하며 학교를 삼키려는 괴물에 맞선다. 이때 안은영에게서는 눈앞의 부당함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단호하고 터프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처럼 다정함과 분노, 유머와 냉소, 용기와 망설임이 한 인물 안에서 공존한다. 이러한 다층성은 인물을 단순히 호감이나 비호감으로 분류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렇게 다양한 결을 지닌 인물들이 모여 이루는 세계는 자연스럽게 알록달록해진다. 정세랑의 세계는 특정한 가치 하나로 정렬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삶의 리듬과 선택들이 겹쳐지며, 그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실망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예상보다 훨씬 더 멋진 존재로 드러난다. 인간을 미워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 만큼, 그 미움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게 만드는 장면들도 함께 놓인다. 정세랑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이야기 속에 흘려보낸다.

그래서 정세랑의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묘한 안심이 생긴다. 이 세계에서는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 단 한 번의 영웅적 결단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세계 속에서 서로 주인공이 되어 서로를 돕고 구한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독자는 누군가를 구하는 순간 그 행위가 고립된 희생으로 남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누군가를 구하면서 나 또한 구해질 수 있으리라는 감각, 바로 그 감각이 정세랑의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다.

정세랑의 히어로 서사는 내가 바꿀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좌절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삶을 상상하게 만든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먼저 내민 손을 붙잡고, 또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삶이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세계를 구하지도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누군가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선택이 다음 사람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정세랑이 그리는 세계란, 특별한 영웅이 등장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세계가 아니다. 대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상식이 통하는 다정한 사람들이 조금씩 많아지는 세계다. 인간에게 실망하더라도 그 인간들마저 포용할 수 있게 하는 멋진 사람들을 그리며 서로가 서로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 일이란 무엇인가

열여덟 살인 재훈이는 곰돌이 같고 웃기다. 소설이 언제나 조금 “떠나자, 직업의 세계!”가 될 만큼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재훈이도 좋아하는 일을 천천히 잘 찾으면 좋겠다.

⟪재인, 재욱, 재훈⟫작가의 말

취업 전 내가 일을 떠올렸을 때 그것은 퇴근 이후의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적당한 보수와 안정이 보장된다면, 반복되는 챗바퀴 같은 업무는 일상을 누리기 위한 에너지 축적의 측면에서 오히려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일을 시작하고 나니 일하는 나와 일하지 않는 시간의 나를 분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에 쓰고, 일에 대한 만족과 불만족이 곧 삶 전체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일을 단순한 생계를 위한 수단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정세랑 소설에서 또한, ‘일’은 삶의 외곽에 있는 문제가 아니다.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고, 미뤄두고 싶지만 매일 마주해야 하는 영역이다. 직업은 이상화의 대상도 완전히 벗어나야 할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건이며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정세랑은 일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점유하는지,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꾸준히 관찰한다.

정세랑의 소설에서 일은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도착의 형태로 나타난다. 바라던 일이 아니라 흘러온 자리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감내하고 무엇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이러한 인식은 작가 자신의 이력에서도 확인된다.

정세랑은 처음부터 소설가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문예 계간지 ⟪세계의 문학⟫ 팀의 신입 편집자로 일하며 잡지에 실리는 신작들을 읽었고, 그 과정에서 젊은 작가들의 단편소설에 자극을 받아 “소설을 한 번 써볼까”라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고 말한다. 정세랑의 인물들 또한 대부분 계획하거나 바라던 일을 하고 있지 않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안은영은 이렇게 말한다.

“커트라인 밑이었는데도 간호대에 철썩 붙어서 주욱 병원에 있었다. (…) 왜 하필 간호사를 직업으로 골랐을까. 아니, 아니다. 해가 갈수록 더 느끼는 점이지만 사람이 직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직업이 사람을 고르는 것 같다. 사명 같은 단어를 기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으므로 수긍하고 받아들였다기보단 수월한 인생을 사는 걸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게 맞겠다.”

안은영은 꿈꾸던 일을 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의 직업 선택에는 소명이나 열망보다 우연과 현실적인 조건이 더 크게 작용한다. 간호대에 붙게 되어 간호사를 하게 된 것은 능동적 선택의 결과라기 보단 어쩌다 보니 흘러온 결과에 가깝다. 운명처럼 우연히 일은 내 삶에 들어오게 되고, 선택은 그 다음이다.

『재인, 재욱, 재훈』에서도 비슷한 인식이 반복된다.

“회사원들도 힘들구나.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 뭘 해도 힘드니까 최대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힘든 게 낫잖아.”

이 말에는 직업에 대한 냉소와 동시에 솔직한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 정세랑의 소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다 괜찮다’는 식의 낙관을 제시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렇다면 어떤 힘듦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편한 길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힘듦을 감당할 이유를 찾는 일에 가깝다.

손님이 가고 한아가 코트를 손바닥으로 쓸어보면서 즐거워한다. 한아는 이 일이 단순히 오래된 옷들을 부활시키면서 환경을 보호하는 그런 차원의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예술가까진 아니더라도, 장인의 일 정도는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구에서 한아뿐⟫

『지구에서 한아뿐』의 한아 역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는 홍대 외곽의 한 골목에서 작은 옷수선집을 운영한다. 전 세계 빈티지 시장을 떠돌다 국내에 빈티지 문화가 정착하면서 비로소 자리를 잡았고, 단순히 옷을 고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작업을 만들어낸다.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디자인을 담되 사연 있는 옷들의 원래 이야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작업을 이어간다. 한아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안정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다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에서 얻는 만족을 통해 삶의 만족도를 유지한다.

소설 속 한아의 태도는 정세랑 자신의 노동 조건과도 겹친다. 『지구에서 한아뿐』이 출간될 무렵, 정세랑은 편집자 일을 병행하며 퇴근 후와 주말을 쪼개 쓰고 여름휴가를 바쳐 소설을 썼다. 『덧니가 보고싶어』에서 그는 ‘물류회사의 웹 관리자든, 장르문학 소설가든 모두 신경증에 걸리기 쉬운 직업’이라고 말한다. 투잡으로 글을 써나가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지,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돈을 잘 버는 일이 우연히 좋아하는 일이 되는 경우는 행운에 가깝고 대부분의 경우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부심이 필요하다. 불공평하고 부당한 세상 속에서 노력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그 버팀목이 되는 감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저 프리랜서 노동자일 뿐이고, 업계의 구조는 점점 나빠져가고 있으며, 동세대는 가난해서 문화에 많은 소비를 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생계를 확보하고 생계 너머로 가기 위해 발버둥치느라, 환상 따위에 좌지우지될 시간이 없다. 월급 사실주의는 직관이 반짝이는 농담이자 패러디 일뿐, 새로 등장한 문예사조나 운동 같은건 아니다. 그러나 유효기간이 지난 권위를 신경쓰지 않고 직업인으로 스스로를 다져가며, 홀로 묵묵히 쓰는 월급 사실주의자들이 는다면 문학계가 지금보다 건강해지리라 생각된다. 얼떨결에 월급 사실주의자가 되어버렸지만, 한동안은 이대로 지내볼까 하는 중이다.

(보그 코리아 인터뷰, 2017)

보그 코리아 인터뷰에서 정세랑은 자신과 동세대를 “그저 프리랜서 노동자”라고 표현한다. 현재의 문학 노동을 둘러싼 조건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 담겨있다. 환상에 기대어 창작을 지속하기에 구조는 지나치게 취약하고 생계는 늘 선행 과제가 된다. 그가 말하는 ‘월급 사실주의’는 새로운 문예 사조라기 보다는 유효기간이 지난 권위를 신경 쓰지 않고 직업인으로서 자신을 단련해 나가는 태도에 가깝다. 얼떨결에 월급 사실주의자가 되었지만, 당분간은 이 방식으로 버텨보겠다는 말에는 체념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이용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자본이나 권력이 있어야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완전한 순수성을 지켜서 옳은 사람들이 인정받고 나쁜 사람들이 벌을 받는 세상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그럴 때 어떤 주도권을 가지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웹진 채널예스 인터뷰, 2018)

소설가 정세랑에게 일이란 이상적 가치나 환상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 역시 순수한 예술의 영역이기보다, 생계를 위해 납기를 지키는 비즈니스의 성격을 지닌다. 그럼에도 그는 예술이 지닌 힘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세랑은 자본과 권력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완전한 순수성이 보장된 세계가 아니라면, 무엇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힘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정세랑 소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직업인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잘하고 싶어지고, 잘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그 힘을 얻기 위해 다시 노력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일은 더 이상 삶의 바깥에 머물지 않는다. 정세랑이 그려내는 직업윤리는 이처럼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환상을 거두되 책임을 남기고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힘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태도 속에서, 일은 비로소 삶의 일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