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뉴스룸

문화 일반

[제5회 동제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평

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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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심사평>

—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신상원

○ 수상작

우수작: 신채린 「송진」

가작: 황다예 「비누」

가작: 고성건 「우주와 점심 사이」

○ 심사기준

이번 동제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는 먼저 작품 자체의 문학적 완성도를 중심에 두고 진행하였다. 먼저 주제의식과 사유의 깊이를 통해, 작품이 단순한 감정 표출이나 경험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문제의식을 스스로 구축하고 있는지를 살폈다. 다음으로 언어의 밀도와 표현력은 시가 지닌 응축과 함축의 힘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시어의 선택이 필연적인지, 이미지가 설명을 대신하여 의미를 생성하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하였다. 형식적 완성도에서는 행과 연의 구성, 내적 리듬, 전개와 전환의 구조가 작품의 의미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잘 조직되어 있는지를 확인하였으며, 독창성과 개성은 소재의 새로움만이 아니라 익숙한 대상을 다루더라도 자기만의 시각과 의미로 재창조하였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았다. 또한 정서적 설득력은 감정의 강도보다 진정성과 절제, 그리고 독자에게 남기는 여운의 깊이를 기준으로 삼았다.

아울러 본 대회가 한의학전문대학원이라는 학문 환경에서 개최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의료·생명·한의학과 관련된 경험과 감각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시적 이미지와 사유의 층위를 확장하는 경우를 적극적으로 평가하였다. 다만 전문 용어의 표면적 차용을 권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공적 언어가 체화된 감각과 상상력을 통해 시적 언어로 변환될 때 비로소 작품의 고유한 성취로 인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이러한 기준 아래, 심사는 문학적 완성도를 중심에 두되 대회의 고유한 배경에 관련된 독창적 가능성까지 함께 가늠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 시 부문 출품작 경향 총평

올해 시 부문 출품작들은 전반적으로 개인적 정서와 일상적 체험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다수를 이루었으며, 관계의 거리감, 감각의 기록, 자기 성찰적 태도 등이 주요한 주제적 흐름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립’, ‘상실’, ‘내면의 균열’과 같은 정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였는데, 이는 현재 청년 세대가 경험하는 정서적 풍경을 비교적 솔직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연물에 대한 관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는 단순한 자연 예찬이라기보다, 현실적 관계의 피로로부터 물러나고자 하는 정서적 태도의 반영으로 읽힌다. ‘나뭇가지’(김민주 「나뭇가지와 혈관」), ‘나무’(송준형 「당연한 피해자」), ‘비누’(황다예 「비누」), ‘모래’(신채린 「오아시스」), ‘송진’(신채린 「송진」)과 같은 이미지들은 외부 세계를 묘사하는 대상인 동시에, 현실에 대한 피로와 거리두기를 수행하는 매개로 사용된다. 이러한 인간 관계의 단절감, 고립감의 경향은 다수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된다. 마찬가지로 고성건의 「우주와 점심 사이」는 거대한 우주적 질서와 당장의 생존 조건 사이의 불화를 유머러스하게 드러내면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화자의 감각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제시한 작품이다. 이처럼 올해 출품작들에서는 세계와의 조화보다는 어긋남과 틈새에 머무르는 감정이 반복적으로 표출되었으며, 이는 ‘관계의 거리감, 고립감, 내면의 균열’이라는 공통된 정조로 수렴되고 있다.

다만 일부 작품은 감정의 직접적 표출이나 상황 설명에 머무르며, 시적 이미지의 응축이나 언어의 긴장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한계도 함께 드러났다. 산문적 서술이 길어지거나, 이미 익숙한 비유와 상투적 표현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독창적인 시어(詩語)로 압축해내지 못한 작품들도 있었다. 이는 시가 지닌 고유한 압축성과 함축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결과이어서 비록 공감이 가는 정서를 담았을지라도 심사 과정에서는 거리를 두고자 하였다.

한편 일부 작품에서는 맥, 경맥, 장부, 진단 등 한의학·의학적 개념을 이미지의 재료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눈에 띄었다. 이는 이 대회가 개최되는 독자적 학문적 배경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현상이며, 전공 경험이 시적 상상력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이미지와 메타포를 다루는 방식은 대체로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으며, 전문 용어가 충분한 시적 변환을 거치지 못한 채 설명적 장치로 사용된 경우도 많았다. 특히 한의학의 전통적인 이론 체계 자체가 은유와 대응 관계를 중시하는 비류취상(比類取象)의 학문적 논리를 바탕에 두고 있어 시적 언어로의 승화 가능성이 무한히 잠재되어 있음에도, 이를 창조적으로 변용하거나 심화된 사유로 확장한 사례는 이번 응모작들에서는 특별히 발견하기 어려웠다.

종합하면, 올해 출품작들은 정서적 진정성은 비교적 충실했으나, 시적 형식과 언어의 완성도 면에서는 아직 성장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앞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서술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시적 상상력과 표현의 절제가 함께 강화되기를 기대한다.

○ 당선작 심사평

당선작 「송진」 심사평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한 이유는 송진이라는 중심 이미지를 축으로 색채 대비와 물성의 변화 과정을 치밀하게 조직하며, 시적 이미지와 구조가 충분히 구축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푸른 소나무와 노란 울음의 대비, 울음이 결정과 결핍으로 응고되는 흐름은 고통이 존재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이 시는 섣불리 치유나 희망으로 이동하지 않고 상처를 온전히 감당하는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화자의 고유한 존재 방식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침묵으로 하늘을 우러르는 푸른 소나무의 형상을 통해, 이 존재가 세계를 지향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소나무는 번다히 말하지 않고 다만 침묵 속에서 높고 푸른 하늘을 향한다. 이 세계의 이상을 향하는 창창한 생명력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푸르름은 ‘깊은 생채기’에서 배어 나오는 ‘노란 울음’을 만난다. 신선하고 창창한 푸른 외피와 고름처럼 더러운 노란 울음의 대비는, 존재가 지향하는 이상과 현실의 고통 사이에 놓인 간극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생명이라는 이름 아래 은폐된 고통의 층위를 노출시킨다.

시의 중심에는 송진의 물리적 위상 변화가 놓여 있다. 울음은 혈관 속에서 시작되어, 자신을 깨우던 바람마저 붙잡는 점성이 되고, 침잠과 화농을 거쳐 굽어든 치욕으로 접힌다. 그것은 다시 뼈가 되고, 침묵의 결정이 되며, 끝내 ‘투명한 결핍’으로 남는다. 이 연쇄는 ‘희망과 치유’의 서사도 아니고 ‘의존과 구원’의 서사도 아니라 ‘인내와 응고’의 서사이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내부로 굽어 들어가 존재의 구조가 된다. 화자는 아픔을 말하지만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위로나 극복의 언어 대신, 상처가 몸 안에서 어떻게 굳어가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문제의 해소가 아니라, 온전한 견딤의 자세다.

이 시를 읽는, 나약하고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살아온 독자는 중요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희망은 때로 가장 정교한 자기기만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 「어항」에서 제시된 ‘투명한 어항’과 ‘세련된 기만’은, 구조 속에 있으면서도 자유를 착각하는 상태를 보여준다. 벽이 보이지 않기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아마도 화자는 ‘어항’ 속에서의 깨달음을 거쳐, ‘소나무’의 침묵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섣부른 희망을 벗겨낸 자리에서 남는 것은, 안으로 침묵하며 하늘을 우러르는 견딤의 자세다.

그리하여 결정으로 단단해진 ‘송진’은 패배의 잔해가 아니라 떳떳한 고통의 흔적이며, 소나무의 침묵은 장엄한 견딤이다. 그것은 구원도 아니고 치유도 아니다. 다만 상처를 부정하지 않고, 섣부른 희망으로 덮지 않으며, 그대로 감당해 냄으로서 존재의 존엄함을 지켜낸다. 하늘을 우러르는 소나무는 이상을 추구하는 형상이며, 그 형상을 통해 상처 이후에도 무너지지 않는 삶의 자세를 조용히 암시한다. 이 작품은 희망의 약속이 아니라, 결핍을 안고도 자기 자리에 서 있는 존엄의 감각을 말하고 있다.

가작 「비누」 심사평

「비누」는 일상적 사물을 화자로 삼아 자기의 소진과 그것이 남긴 흔적에 대한 정서를 사유한 작품이다. 닳아가며 씻어내는 존재인 비누의 시점은, 관계 속에서 소진을 겪는 보편적인 우리 현대인의 삶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너는 스스로 지키는 법을 배웠다”는 문장은 돌봄의 대상이 더 이상 무방비하지 않게 되었음을 말하면서도, 그 변화를 지켜보는 화자의 담담한 인식을 담고 있다. 특히 “너무 얇아져 / 쥐면 부서질 것 같은 삶의 끝 / 그래도 젖은 몸에서는 아직 향기가 났다”는 구절은 거의 소진된 존재가 자신이 남긴 흔적을 확인하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소진 자체에 대해 연민이나 비애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는 격정적 사랑이나 영웅적 희생이 아니라, 소모를 감수한 돌봄 뒤에 남는 조용한 보람과 완수의 감각에 가깝다.

오늘날 우리는 촘촘히 얽힌 관계망 속에서 서로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조금씩 자신을 소모하며 살아간다. 「비누」는 이러한 상호 소모의 구조를 전제로, 거기에서 비롯되는 일상의 소진을 과장 없이 보여주며,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남는 향기처럼 관계와 소진의 의미를 사유하게 한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인 시인이 사회 속 희생의 구조를 성숙한 감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이미지의 응축이 더 이루어졌다면 작품의 밀도가 한층 강화되었을 아쉬움은 있으나, 동시대적 관계의 윤리를 일상적 사물에 투사한 진실한 시도로서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가작 「우주와 점심 사이」 심사평

「우주와 점심 사이」는 거대한 세계와 사소한 일상의 간극을 병치하며, 내면에 드리운 괴리감과 불화를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우주’라는 거대 담론과 ‘점심’이라는 일상의 순간 사이에서 화자는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 이 대비는 단순한 스케일의 차이를 넘어,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지와 반복되는 현실 사이의 균열을 드러낸다. 작품 곳곳에는 어긋남과 이질감이 배어 있으나, 무겁게 과장하지 않고 현실의 어긋남을 슬며시 비트는 아이러니와 절제된 위트로 풀어낸다. 이러한 태도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오히려 그 간극을 더욱 또렷하게 부각시키며, 정서의 전달력을 높인다.

특히 이 작품은 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 개최되는 문예 대회의 맥락 속에서 더욱 의미를 갖는다. 인간과 생명을 거시적 질서 속에서 사유하는 한의학의 특수한 학문적 환경과, 당장의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현실의 시간은 이 공간의 학생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이중적 세계이기도 하다. 「우주와 점심 사이」는 이러한 괴리를 소재로 삼아 독자의 공감을 극대화하였다는 점에서 대회의 성격을 잘 살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이미지의 응축이 더 이루어졌다면 긴장이 한층 강화되었을 아쉬움은 있으나, 사유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성찰적으로 드러낸 점을 높이 평가하여 가작으로 선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