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뉴스룸

에세이·칼럼

사랑이 제도가 될 때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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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riage Story로 본 관계 재구성의 윤리

영화는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와, 다시 보기가 망설여지는 영화. Marriage Story는 그 경계에 서 있다. 인물 각각의 시선으로 관계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재관람의 욕구를 자극하지만, 이혼이
라는 과정을 끝까지 응시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쉽게 재생 버튼을 누르기 어렵다. 이 작품은 위로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보다, 관계가 해체되는 과정을 회피 없이 보여준다. 오늘날 대중문화가 나는 SOLO, 솔로지옥, 환승연애,
이혼숙려캠프 등을 통해 사랑을 선택과 탈락의 게임, 혹은 극단적 갈등의 장면으로 소비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사건 대신 누적을 택한다. 외도나 폭력 같은 분명한 파국 없이, 말해지지 않은 기대와 반복된 타협이 관계를 잠식하
는 과정을 차분히 따라간다.

◆ 누적되는 감정, 비대칭의 구조

뉴욕의 예술 연극 감독 찰리와 LA에서 상업적 매체로 활동해온 배우 니콜 사이에는 공간과 직업의 비대칭이 존재
한다. 결혼 이후 니콜은 뉴욕으로 이주해 찰리의 극단에서 활동한다. 이는 사랑을 위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커리어 중심을 배우자의 세계 안으로 옮기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혼을 결심하고 LA로 돌아가 다시 상업 활동을 시
작하는 과정은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선택권의 회복이다. 뉴욕/예술과 LA/산업의 대비는 가치의 우열이 아니라 주
체성이 어디에 위치하는가의 문제로 읽힌다. 양육권을 둘러싼 ‘어디서 아이를 키울 것인가’라는 질문 역시 결국 누
가 누구의 삶에서 조연이었는지를 묻는 권력의 문제로 확장된다.

◆ 법의 언어로 재편되는 사랑의 기억

관계의 전환점은 변호사의 등장이다. 사랑의 언어는 법의 언어로 대체되고, 기억은 증거로 재편된다. “형사 변호사
는 나쁜 사람들의 가장 좋은 면을 보고, 이혼 변호사는 좋은 사람들의 가장 추한 면을 본다”는 대사는 이 변환을 압
축한다. 법정 장면에서 당사자들은 거의 침묵하고, 대리인들이 부분적 진실을 공격의 형태로 배열한다. 이혼은 단
지 관계를 끝내는 일이 아니라 과거를 다시 서술하는 과정이며, 그 서술은 대개 승리를 향해 정렬된다. LA 임시 거
처에서의 격렬한 말다툼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당신이 죽어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잔혹한 말은 곧 오열과 사과로 이어지고, 니콜은 분노 대신 그를 껴안는다. 가장 거친 언어가 오히려 관계의 잔존을 드러내는 역설이다. 영화는 결혼이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며, 소송 중에도 서로를 돕는 장면을 통해 이혼을 종결이 아닌 재배치로 제시한다. 감독 Noah Baumbach은 음악을 절제하고 숨소리와 침묵을 남겨둔다. 감정을 대신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직접 그 불편함을 감당하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신발끈을 묶어주는 작은 제스처처럼, 사랑은 끝날 수 있어도 사랑했던 시간까지 지울 수는 없다는 사실이 조용히 남는다.